과천경마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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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삼세상설 댓글 0건 조회 2회 작성일 25-12-02 11:40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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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생을 통해 졸업장을 받아본 적이 없다.” 한국 안과학(眼科學)의 개척자 공병우 박사가 허세를 부릴 때마다 하던 말이다. 어려서부터 남달리 총명했던 공병우는 소학교와 농림학교 졸업 전 상급학교에 진학했고, 2년제 평양의학강습소에서 공부하던 1926년 19세 때 ‘의사 검정 시험’에 합격해 의사 면허를 취득했다. 의학 교육기관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일제강점기에는 정규 의과대학이나 의학 전문학교를 졸업하지 않더라도 의사 검정 시험에 응시할 수 있었고, 게임몰릴게임 합격하면 의사 면허를 발급받았다.
공병우는 의사 면허를 취득한 이후 경성의전과 경성제대 의학부에서 조수로 근무하면서 본격적으로 의학을 공부했다. 그 기간 학술지에 게재한 논문 11편을 아무런 연고도 없는 나고야제국대학에 학위 논문으로 제출해 1936년 29세 때 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일제강점기 35년 동안 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릴게임야마토 한국인은 330명이었는데, 2년제 의학 강습소 출신으로는 공병우가 유일했다. 이듬해 공병우는 종로에 한국 최초의 안과 전문병원 ‘공안과’를 개원했다.
공병우는 안과 개업 첫해에 환자로 찾아온 한글학자 이극로와 친분을 쌓았고, 그에게서 “한글 사랑은 애국애족의 첫걸음”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해방 이후 경성의전이 서울대 의과대학으로 재편되는 바다이야기#릴게임 과정에서 공병우는 잠깐 안과 교수로 초빙됐다. 그는 ‘한글 시력 검사표’를 만들었고, 일제강점기 그가 일본어로 출간했던 안과학 교과서를 한글로 번역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그러나 그의 원고를 정서하는 조수들의 필체가 제각각이어서 알아보기 어려웠고, 작업 속도도 너무 느렸다. 한글 타자기가 필요했는데, 1914년 재미교포 이원익이 개발한 최초의 한글 타자기나 오션파라다이스예시 1934년 유학생 송기주가 상업적으로 출시한 한글 타자기는 영문 타자기만큼 빠르게 문자를 찍어낼 수 없었다. 한번 꽂히면 해결될 때까지 물러서지 않았던 ‘괴짜 천재’ 공병우는 스스로 한글 타자기 개발에 나섰다.
한자를 필수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일문과 중문 타자기는 문자를 ‘찍는 기계’라기보다는 자판을 두드리고, 레버를 움직여 방대한 활자 바다이야기예시야마토게임 뭉치에서 원하는 글자를 ‘고르는 기계’였다. 1915년 개발된 일문 타자기는 1500~2000자의 글자가 내장돼 있었고, 숙달된 타자수는 1분에 30자 정도 찍을 수 있었다. ‘생활의 발견’(1937)으로 중국인 최초로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른 린위탕(임어당)은 1930년대부터 중문 타자기 개발에 나서 1947년 밍콰이(明快) 타자기를 출시했다. 왼쪽 상단에서 오른쪽 하단 방향으로 부수를 하나씩 입력해서 8352개의 활자 뭉치 가운데 원하는 글자를 찾아내는 방식이었다. 숙련된 타자수는 1분에 50자 정도 찍을 수 있었다.
1947년 공병우는 자택에 작업실을 마련하고 진료 시간을 줄여가며 한글 타자기 개발에 매달렸다. 처음에는 자음·모음 각 한 벌씩, 두벌식으로 자판을 연구했으나 받침을 쓸 때마다 매번 시프트 키를 누르는 것이 비효율적이어서, 개발 방향을 수정해 받침 자음 한 벌을 별도로 덧붙인 세벌식 자판을 개발했다. 1948년 2월 공병우는 ‘세벌식 쌍초점 타자기’로 특허를 출원해 이듬해 한글 타자기로는 최초로 특허 등록했고, 같은 해 조선발명장려회가 주최한 한글 타자기 현상 공모에서 1등상 없는 2등상을 받았다. 1950년 미국에 특허를 출원해 1953년 미국 특허도 취득했다. 이는 한국 국적자가 미국 특허를 취득한 최초의 사례였다.
공병우 박사가 1950년 자신이 개발한 타자기 시제품으로 출력한 문서. 받침 있는 모음과 받침 없는 모음의 길이가 같아 당대에는 빨랫줄에 글자를 널어놓은 것 같다고 ‘빨랫줄 글꼴’이라 조롱당했지만, 현대적인 감각에서 미적으로 떨어져 보이지는 않는다. / '월간 아메리카'(1950)
공병우 타자기는 가로쓰기를 실용적으로 구현한 최초의 타자기였고, 숙련된 타자수는 1분에 500타 이상을 칠 수 있어 속도 면에서 영문 타자기를 능가했다. 공병우가 언더우드사에 제작 의뢰한 시제품 3대는 6·25전쟁 직전 한국에 도착했다. 당시 세계 1위 타자기 회사였던 언더우드사는 연희전문학교 설립자 호러스 언더우드의 친형 존 언더우드가 창립했고, 연희전문학교 설립과 운영에 막대한 자금을 기부한 한국과 인연이 깊은 회사였다.
6·25전쟁으로 공병우는 죽을 고비를 맞았지만, 다른 한편으로 한글 타자기 보급에 결정적인 기회를 잡았다. 인민군이 서울을 점령한 직후 공병우는 정치보위부에 연행됐다. 1946년 조선공산당이 위조지폐를 찍어 유통시킨 ‘정판사 사건’ 공판에서 공병우는 “경찰에 고문을 당해 눈이 멀었다”고 주장한 피고인 송언필을 감정한 적이 있었다. 공병우가 엄밀한 의학적 검사 끝에 내린 결론은 ‘당뇨로 인한 실명’이었지만, 인민군은 이를 트집 잡아 그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총살을 기다리는데, 인민군 장교가 “인민공화국에 타자기 설계도를 바치면 살려주겠다”며 공병우를 회유했다. 공병우는 타자기 설계도를 그리는 척 시간을 끌다가 인민군이 서울에서 퇴각할 때 달아나 목숨을 건졌다.
일러스트=한상엽
공병우 타자기에 가장 먼저 관심을 보인 곳은 해군이었다. 해군참모총장 손원일 제독은 전쟁 중에 신속한 문서 작성을 위해 한글 타자기 구입을 지시했다. 해군을 시작으로 6·25전쟁 기간 공병우 타자기는 빠른 속도로 3군에 퍼져 나갔다.
1953년 7월 휴전협정문은 영어·한국어·중국어 세 가지 언어로 작성됐다. 휴전 협상에 남한 대표는 참여하지 않았지만, 공병우 타자기와 남한 타자수는 참여했다. 회의가 끝날 때마다 한글·영문·중문으로 회의록을 작성했는데, 타자기 성능이 가장 뛰어난 한글본이 매번 가장 먼저 완성돼 결재를 맡았다.
종전 이후 공병우는 한글 타자기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고, 한글학회 등 한글 운동 단체를 꾸준히 지원했다. 1980년대 공병우는 한국문화원을 설립하고 PC용 한글 워드프로세서를 개발하는 청년들에게 연구 공간과 인력, 자금을 지원했다. 공병우가 한국문화원에 내준 조그만 사무실에서 이찬진·김택진·우원식 등 대학생들이 1989년 ‘ᄒᆞᆫ글1.0’을 개발했고, 이듬해 ‘한글과컴퓨터사’를 설립했다.
1999년 특허청은 공병우를 세종대왕·장영실·이순신·정약용·지석영·우장춘과 함께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가 7인에 선정했다. 2024년 국립한글박물관은 ‘한글 100대 문화유산’ 목록을 발표했는데, 1번이 1446년 반포된 ‘훈민정음 해례본’, 100번이 1949년 개발된 ‘공병우 타자기’다.
<참고 문헌>
공병우, ‘내가 고안한 쌍초점 한글 타자기’, 월간 아메리카 제2-2호, 1950
공병우, 나는 내식대로 살아왔다, 대원사, 1989
김태호, 한글과 타자기, 역사비평사, 2024
송현, ‘공병우 박사의 업적과 한글 기계화의 당면 과제’, 나라사랑 제117호,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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