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드레닌으로 되찾는 아내의 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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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삼세상설 댓글 0건 조회 2회 작성일 25-12-06 23:16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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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드레닌으로 되찾는 아내의 미소
결혼 생활이 길어질수록, 때로는 일상에 지친 나머지 아내의 미소가 점점 사라져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 원인은 어디에서 비롯될까요? 사랑이 식은 걸까요? 아니면 단순히 바쁜 일상에 서로의 감정이 소홀해졌을까요? 그 답은 간단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는 확실합니다. 아내의 미소는 단순한 표정이 아니라, 그녀가 느끼는 안정감과 만족, 그리고 남편과의 깊은 유대에서 비롯됩니다.
문제는, 그런 미소가 사라지면서 부부 사이에 공백이 생기고, 이 공백은 결국 관계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한 노력은 결국 성적인 문제로 귀결되기도 합니다. 특히 남성의 성적 활력이 떨어지면서, 그로 인해 아내와의 관계가 위축되는 상황이 많습니다. 그렇다면 아내의 웃음, 즉 행복한 관계를 되찾기 위한 열쇠는 무엇일까요?
바로 아드레닌입니다. 아드레닌은 남성의 성적 건강을 회복시키고, 지속적으로 활력을 증진시킬 수 있도록 설계된 혁신적인 건강 보조 식품입니다. 아드레닌이 어떻게 아내의 웃음을 되돌릴 수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부부 관계에 어떤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 남성의 활력 회복과 성적 자신감
남성은 나이가 들수록 자연스럽게 성기능과 체력에 변화가 옵니다. 특히 중년 이후, 스트레스와 신체 변화는 성적 활력을 저하시킬 수 있습니다. 피로가 쌓이고, 성욕이 줄어들며, 자신감도 서서히 떨어집니다. 이는 아내에게도 전해져, 부부 간의 관계에 갈등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아드레닌은 이러한 성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아드레닌은 L아르기닌과 L시트룰린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두 성분은 혈액 순환을 개선하고, 산화질소의 생성을 촉진하여 혈관을 확장시키는 데 도움을 줍니다. 결과적으로 발기력 향상에 기여하고, 성적 반응이 원활해집니다. 남성의 성적 건강이 회복되면, 자신감도 자연스럽게 상승하게 됩니다. 이는 아내와의 관계에서도 긍정적인 변화를 불러일으킵니다. 아내는 자신의 남편이 다시 활력을 되찾았음을 느끼고, 두 사람 사이의 유대감이 강화됩니다.
2. 테스토스테론 회복과 성욕 증진
중년 이후 남성은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감소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호르몬은 성욕과 성적 기능에 중요한 역할을 하며, 저하되면 성욕 감소뿐만 아니라 피로, 우울감, 체력 저하 등도 동반할 수 있습니다. 아드레닌은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정상화하는 데 도움을 주는 성분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연, 비타민 D, B군 비타민 등은 모두 테스토스테론 생산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러한 성분들이 함께 작용하여 남성의 성욕을 되살리고, 성적 기능을 개선시킵니다.
3. 부부 간의 감정적 회복
성적 건강이 회복되면, 그 영향은 침실을 넘어 일상 속 모든 상호작용에까지 미칩니다. 성적 교감을 회복한 남편은 아내와의 대화에서도 자신감을 가지게 되며, 아내는 남편과의 관계에서 안정감을 느끼고, 감정적으로 더 가까워집니다. 부부 사이에 다시 대화가 늘고, 서로에 대한 이해와 애정이 깊어지면, 아내는 점차 웃음을 되찾게 됩니다.
이러한 변화는 단지 성적인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아드레닌은 남성의 전반적인 체력을 증진시키고, 스트레스와 피로를 줄이는 데 도움을 주는 다양한 성분들을 함유하고 있습니다. 이는 남편이 일상에서 더 활기차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발산하게 만듭니다. 결과적으로 부부 간의 관계는 더욱 원활해지고, 아내의 미소도 자연스럽게 되돌아옵니다.
4. 아드레닌의 효과적인 사용
아드레닌은 하루 12정의 복용으로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꾸준한 사용을 통해 혈액 순환과 성적 기능을 회복하고, 호르몬 균형을 맞출 수 있습니다. 복용 후에는 2주에서 4주 정도의 기간이 지나면 변화를 느낄 수 있으며, 3개월 이상 지속적인 섭취를 통해 더욱 눈에 띄는 개선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아드레닌은 약물이 아니므로 부작용이 적고, 건강을 위한 자연스러운 보조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5. 아드레닌을 통한 관계 회복
결국, 아내의 웃음을 되돌리는 핵심은 바로 신뢰와 소통, 그리고 성적 건강입니다. 아드레닌은 남성의 성적 건강을 회복시켜 자신감을 되찾게 만들고, 이로 인해 부부 관계가 한층 더 강화됩니다. 성적인 만족도가 높아지면, 서로 간의 애정 표현도 자연스럽게 늘어나고, 대화의 질도 높아집니다. 이러한 변화는 아내의 웃음을 되살리고, 부부가 다시 친밀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6. 결론
아내의 웃음은 단순한 표정이나 습관이 아닙니다. 그것은 부부 간의 감정적 교류와 신뢰, 그리고 성적 만족에서 비롯되는 중요한 신호입니다. 만약 당신이 아내의 웃음을 되찾고 싶다면, 당신의 성적 건강을 다시 돌아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아드레닌은 남성의 성적 건강을 회복시키는 중요한 열쇠가 될 수 있습니다. 아드레닌을 통해 성적 자신감을 되찾고, 부부 관계를 회복하세요. 아내의 미소를 되찾을 수 있는 첫걸음은 바로 지금,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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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admin@seastorygame.top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다래나무로 알려진 창경궁 후원의 천연기념물 다래나무는 600살이 넘는다. 덩굴 길이가 20m 줄기 굵은 부분의 둘레가 70cm가 넘는 다래나무 지존급이다. 문화유산청 제공
살어리 살어리랏다
쳥산(靑山)애 살어리랏다
멀위랑 ᄃᆞ래랑 먹고
쳥산(靑山)애 살어리랏다
얄리 얄리 얄랑셩 얄라리 얄라
고려가요 「청산별곡」(靑山別曲)의 첫 부분이다. 청산에 들어가 머루나 다래를 따먹고 사는 '자연인' 바다이야기오락실 의 삶을 노래한 것인지 아니면 현실의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서 청산으로 도피를 원하는 노래인지 해석의 차이는 있지만 다래가 우리 강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야생 과일 중 소중한 먹거리이자 배달의 민족과 친숙한 식물이었음을 방증한다.
다래의 이름은 달다는 뜻의 'ᄃᆞᆯ'과 명사화 접사인 'ᄋᆞㅣ'가 합쳐진 말로 'ᄃᆞᆯᄋᆞㅣ>ᄃᆞ래>다ᄅᆞㅣ> 황금성슬롯 다래'로 변화한 것으로 추정된다. 초가을에 약간 누런 풀색으로 익는 열매는 이름 그대로 맛이 달콤하다.
국어사전의 다래는 열매와 그 열매를 맺는 덩굴성 나무를 아우르는 말이다. 1937년 편찬된 『조선식물향명집』에는 '다래나무'로 기록돼 있지만 국립수목원의 『국가표준식물목록』엔 '나무'가 빠지고 다래로 나온다. 독자들이 헷갈리지 않고 이해 황금성오락실 하기 쉽도록 열매를 '다래'로 줄기를 '다래나무'로 구분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다래나무는 깊은 산속이 아니라 아이러니하게도 서울 도심의 창경궁 후원에 있다. 1975년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는데 당시 나이가 약 600살로 추정됐다.
여러 개의 굵은 줄기가 승천하는 용처럼 사방으로 길게 구불구불 뻗어 있고 상태도 괜 야마토게임하기 찮다. 궁에서 터를 잡아서 인지 덩굴 길이가 20m 줄기 굵은 부분의 둘레가 70cm가 넘어 몸피도 '지존' 급이다.
높은 나뭇가지를 타고 올라가는 다래나무 줄기.
◆다양한 쓰임에 사시사철 수난
오 모바일바다이야기하는법 늘날 과일은 간식거리이지만 옛 사람들은 굶주림을 면할 중요한 양식이었다. 특히 산에 있는 다래나 머루는 주인이 따로 없으니 먼저 본 사람이 임자다. 익은 열매를 따려는 사람들이 덩굴과 가지를 꺾고 부러뜨리기 마련이다. 이런 다래의 수난이 비단 가을뿐이겠는가.
따뜻한 봄 다래의 부드러운 어린순을 데쳐서 나물로 무쳐 먹거나 삶아 말린 뒤 묵나물로 만들어 겨울이나 이듬해 봄에 먹을 요량으로 산골 사람들은 가지를 완전히 훑다시피 한다. 짐승들도 햇순을 날름 뜯어 먹어버리니 광합성을 위해 키 큰 나무의 줄기를 타고 높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 곡우가 지나고 생육활동이 왕성해지면 다래나무도 수액을 뽑힌다. 거제수나무나 고로쇠나무 등 큰 나무에는 구멍을 뚫어 수액을 채취하지만 다래나무에는 줄기를 아예 통째로 잘라버린다.
용케 주변에 있는 높다란 나무를 타고 올라가 덩굴을 사방으로 뻗어 잎을 펼친 다래나무의 줄기는 생각보다 굵고 길게 자라서 둘레가 서너 뼘에 이른다. 이런 굵은 줄기를 옛사람들은 가만히 두지 않고 베어다가 계곡을 건너는 구름다리를 만드는데 썼다. 눈이 많이 오는 산간 지역에서는 가는 줄기로 눈에 발이 푹푹 빠지지 않도록 설피를 만들었다. 쓰임이 다양하니 옛날 다래나무의 수난은 계절을 가리지 않았다.
주렁주렁 달린 다래
◆꽃 피어도 열매 없는 수 그루
깊은 산의 너덜지대나 개울가에 주로 분포하는 다래나무는 아이들 손바닥만 한 타원형의 잎 사이에 4월말부터 5월쯤 줄기와 잎자루 사이에 꽃대가 올라오고 하얀 꽃이 3∼10송이 조롱조롱 핀다. 암수가 딴 그루라서 꽃이 피지만 열매가 없는 다래나무도 있다. 매미 울음소리를 들으며 다래는 한창 굵는다. 그 소리가 잦아들면 황갈색으로 익는다.
조선시대 철 따라 새로 난 과실(果實)이나 농산물(農產物)을 종묘에 먼저 올리는 천신(薦新)을 거행했는데 9월 제물 목록에 다래[獼猴桃]가 생기러기[生雁], 석류(石榴), 머루[山葡萄]와 함께 들어가 있을 정도다.
다래 꽃
옛 선비들도 뜰에 다래나무를 심어서 꽃을 감상하고 여름에 덩굴의 그늘에서 쉬고 가을에 열매를 즐겼던 같다.
어린잎은 서리와 이슬에도 무성하고
嫩葉饒霜露·눈엽요상로
차가운 뿌리 도끼의 상처에서 벗어나
寒根免斧創·한근면부창
덩굴 멀리 뻗어가기 원하더니
要令滋蔓遠·요령자만원
긴 구름과 서로 만나 의지하네
會見倚雲長·회견의운장
여름날 그늘을 짙게 드리우더니
夏日成陰重·하일성음중
가을바람에 떨어지는 열매 향기롭네
秋風落子香·추풍락자향
다른 해엔 응당 더욱 좋아지리라고
他年應更好·타년응경호
전에 떠났던 유랑(劉郞)이 다시 찾아 달래는구려
前度說劉郞·전도세유랑
<『국간집』(菊磵集) 중권>
조선 명종 때 청백리에 뽑히고 호조판서를 지낸 윤현(尹鉉·1514∼1578)의 한시 「다래나무 덩굴을 옮겨 심고」[移種獼猴桃蔓]다. 제목의 미후도(獼猴桃)는 다래의 중국 이름이다. 다래는 감, 포도와 같은 장과(漿果)로 분류 되는데 씨를 감싸고 있는 과육에 수분이 많다. 익은 다래의 맛이 좋아서 '원숭이 복숭아'로 통용된 것일까?
조선시대에는 다래에다 꿀을 넣고 조린 미후정과(獼猴正果)를 만들어 먹었다. 『조선왕조실록』 선조 26년(1593) 8월 13일에 '제독은 미후정과 한 접시만을 마셨다'는 기록이 있다. 이는 임진왜란 당시 조선을 지원하러 왔던 명나라 이여송 장군의 귀국 길 동태를 선조께 보고한 내용이다.
개다래 열매 꽃 잎
◆다래나무 사촌들
우리 강산에 터를 잡은 다래나무의 사촌은 그리 흔하지 않지만 개다래와 쥐다래가 있다. 초여름 개화기에 둘 다 하얀 물감을 묻힌 것 같은 잎들이 군데군데 섞여 있어 녹음이 울창한 숲에서도 존재를 알린다. 개다래의 흰 반점은 여름 내내 그대로 있지만 쥐다래의 흰색 잎은 불그스름하게 변한다. 개다래는 개화를 알리는 방법으로 잎의 일부 색깔을 파란색 대신 하얗게 만들어 나비나 벌 등 매개 곤충의 눈에 확 띄도록 한다. 열매를 맺고 자손을 퍼뜨려야하는 그들만의 전략이다.
사람이 먹지 못하는 식물의 이름에 '개'자가 들어가는 경우가 있다. 개머루나 경상도의 '개가죽'이 그렇고 개다래도 마찬가지다. 열매는 익어도 톡 쏘는 맛 때문에 동물은 입에 댈 엄두를 못 낸다. 그러나 벌레들은 개다래를 좋아한다. 다래에는 잘 없는 충영(蟲癭)이라고 부르는 벌레 혹이 많다. 알에서 깨어난 벌레가 머물며 열매를 파먹으면 다래는 화학적 변화를 일으키고 모양이 울퉁불퉁한 기형이 된다. 한방에서는 이를 목천료자(木天蓼子)라는 약재로 쓴다.
양다래 꽃과 열매
◆키위의 원조는 중국 다래
외국에서 들어온 다래의 사촌뻘로는 키위가 있다. 다래과 집안의 후손답게 덩굴성 낙엽과수로 원산지는 중국 양쯔강 연안이지만 서양 과일로 오해하는 사람이 많다. 까닭이 뭘까?
19세기 양쯔강 유역에 살던 서양인의 눈에 띈 덩굴나무 '차이니스 구스메리'(Chinese gooseberry)가 키위의 원조다. 열매의 톡 쏘는 맛이 너무 자극적이라 먹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 후 20세기 초 귀국하는 서양인들의 이삿짐에 실려 뉴질랜드에 조경수나 관상수로 전해졌고, 그 곳의 원예가들이 과일나무로 육종했다.
자잘한 씨앗을 씹는 재미와 시고 단 맛의 묘한 조화로 관심을 끌자 뉴질랜드는 세계시장 진출을 목표로 나무를 대량 재배하고 이름도 '키위플루트'(kiwi fruit)로 바꿔 상품화 했다. 갈색 털로 덮여 있는 열매가 뉴질랜드의 '키위' 새와 닮아서 작명에 착안했다. 중국 다래의 개량종이 아닌 뉴질랜드 키위라는 이름으로 우리나라에 소개됐기 때문에 원산지를 서양으로 착각하는 게 어쩌면 당연하지 않았을까.
키위를 한때 '참다래'라고 부른 적이 있다. 토종다래는 '참이 아닌 가짜' 다래라는 오해의 소지가 다분하다는 여론이 비등하자 양다래라고 바꿨다. 키위는 수확한 뒤 일정 기간 익혀서 먹는 후숙(後熟) 과일이다. 신맛을 좋아하면 약간 과일이 단단할 때, 달콤한 맛을 즐기려면 복숭아처럼 말랑말랑할 때 먹으면 제 맛을 느낀다.
◆다래정 이야기
18세기 조선의 지식인 이덕무가 쓴 「앙엽기2」(盎葉記二)에 다래를 한자의 음을 빌려 쓴 '炟艾'(다래)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미후도(獼猴桃)는 일명 연도(輭桃)이고 속명은 다래[達愛]이다. 『여지승람』(輿地勝覽)에, "고려 신종 초년에 최충헌(崔忠獻)이 내시 민식(閔湜) 등을 축출하자고 주청할 때, 세속에서 왕이 다래정[炟艾井]-상고하건대, 다래[炟艾]는 곧 다래[達愛]와 동음(同音)이다-의 물을 마시면 내시들이 용사(用事)한다 하여 다래정을 허물어 버렸다" 하였고, 속어로 등리(籐梨)를 다래[炟艾]라 하는데 등리 두 글자는 아주 새롭다. <『청장관전서』 제55권>
고려시대 무인정권의 한 축인 최충헌은 이의민(李義旼)을 몰아내고 권력을 찬탈한 뒤 자신의 시대를 새롭게 확립하려 했다. 왕궁의 내시(內侍) 70여 명을 내쫓을 빌미를 찾던 중에 왕이 마시던 우물 '다래정'(炟艾井)에서 꼬투리를 잡았다. "왕이 이 우물물을 마시면 환관(宦官)이 권세를 부리게 되리라"는 시중의 떠도는 말을 대의명분으로 다래정을 폐쇄하고 광명사(廣明寺) 우물의 물을 마시게 했다.
꼭두각시에 불과한 왕이 마실 물조차 마음대로 선택하지 못하던 시대의 이야기다. 역사서 『동사강목』이나 『고려사절요』에도 같은 일화가 나온다. 우물 이름을 다래나무와 연관 지으면서 그 이유는 기록에 없다. 다만 쿠데타 세력이 국정을 농단한 흑역사로 남아 있다.
전 언론인 chunghaman@korea.com
살어리 살어리랏다
쳥산(靑山)애 살어리랏다
멀위랑 ᄃᆞ래랑 먹고
쳥산(靑山)애 살어리랏다
얄리 얄리 얄랑셩 얄라리 얄라
고려가요 「청산별곡」(靑山別曲)의 첫 부분이다. 청산에 들어가 머루나 다래를 따먹고 사는 '자연인' 바다이야기오락실 의 삶을 노래한 것인지 아니면 현실의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서 청산으로 도피를 원하는 노래인지 해석의 차이는 있지만 다래가 우리 강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야생 과일 중 소중한 먹거리이자 배달의 민족과 친숙한 식물이었음을 방증한다.
다래의 이름은 달다는 뜻의 'ᄃᆞᆯ'과 명사화 접사인 'ᄋᆞㅣ'가 합쳐진 말로 'ᄃᆞᆯᄋᆞㅣ>ᄃᆞ래>다ᄅᆞㅣ> 황금성슬롯 다래'로 변화한 것으로 추정된다. 초가을에 약간 누런 풀색으로 익는 열매는 이름 그대로 맛이 달콤하다.
국어사전의 다래는 열매와 그 열매를 맺는 덩굴성 나무를 아우르는 말이다. 1937년 편찬된 『조선식물향명집』에는 '다래나무'로 기록돼 있지만 국립수목원의 『국가표준식물목록』엔 '나무'가 빠지고 다래로 나온다. 독자들이 헷갈리지 않고 이해 황금성오락실 하기 쉽도록 열매를 '다래'로 줄기를 '다래나무'로 구분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다래나무는 깊은 산속이 아니라 아이러니하게도 서울 도심의 창경궁 후원에 있다. 1975년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는데 당시 나이가 약 600살로 추정됐다.
여러 개의 굵은 줄기가 승천하는 용처럼 사방으로 길게 구불구불 뻗어 있고 상태도 괜 야마토게임하기 찮다. 궁에서 터를 잡아서 인지 덩굴 길이가 20m 줄기 굵은 부분의 둘레가 70cm가 넘어 몸피도 '지존' 급이다.
높은 나뭇가지를 타고 올라가는 다래나무 줄기.
◆다양한 쓰임에 사시사철 수난
오 모바일바다이야기하는법 늘날 과일은 간식거리이지만 옛 사람들은 굶주림을 면할 중요한 양식이었다. 특히 산에 있는 다래나 머루는 주인이 따로 없으니 먼저 본 사람이 임자다. 익은 열매를 따려는 사람들이 덩굴과 가지를 꺾고 부러뜨리기 마련이다. 이런 다래의 수난이 비단 가을뿐이겠는가.
따뜻한 봄 다래의 부드러운 어린순을 데쳐서 나물로 무쳐 먹거나 삶아 말린 뒤 묵나물로 만들어 겨울이나 이듬해 봄에 먹을 요량으로 산골 사람들은 가지를 완전히 훑다시피 한다. 짐승들도 햇순을 날름 뜯어 먹어버리니 광합성을 위해 키 큰 나무의 줄기를 타고 높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 곡우가 지나고 생육활동이 왕성해지면 다래나무도 수액을 뽑힌다. 거제수나무나 고로쇠나무 등 큰 나무에는 구멍을 뚫어 수액을 채취하지만 다래나무에는 줄기를 아예 통째로 잘라버린다.
용케 주변에 있는 높다란 나무를 타고 올라가 덩굴을 사방으로 뻗어 잎을 펼친 다래나무의 줄기는 생각보다 굵고 길게 자라서 둘레가 서너 뼘에 이른다. 이런 굵은 줄기를 옛사람들은 가만히 두지 않고 베어다가 계곡을 건너는 구름다리를 만드는데 썼다. 눈이 많이 오는 산간 지역에서는 가는 줄기로 눈에 발이 푹푹 빠지지 않도록 설피를 만들었다. 쓰임이 다양하니 옛날 다래나무의 수난은 계절을 가리지 않았다.
주렁주렁 달린 다래
◆꽃 피어도 열매 없는 수 그루
깊은 산의 너덜지대나 개울가에 주로 분포하는 다래나무는 아이들 손바닥만 한 타원형의 잎 사이에 4월말부터 5월쯤 줄기와 잎자루 사이에 꽃대가 올라오고 하얀 꽃이 3∼10송이 조롱조롱 핀다. 암수가 딴 그루라서 꽃이 피지만 열매가 없는 다래나무도 있다. 매미 울음소리를 들으며 다래는 한창 굵는다. 그 소리가 잦아들면 황갈색으로 익는다.
조선시대 철 따라 새로 난 과실(果實)이나 농산물(農產物)을 종묘에 먼저 올리는 천신(薦新)을 거행했는데 9월 제물 목록에 다래[獼猴桃]가 생기러기[生雁], 석류(石榴), 머루[山葡萄]와 함께 들어가 있을 정도다.
다래 꽃
옛 선비들도 뜰에 다래나무를 심어서 꽃을 감상하고 여름에 덩굴의 그늘에서 쉬고 가을에 열매를 즐겼던 같다.
어린잎은 서리와 이슬에도 무성하고
嫩葉饒霜露·눈엽요상로
차가운 뿌리 도끼의 상처에서 벗어나
寒根免斧創·한근면부창
덩굴 멀리 뻗어가기 원하더니
要令滋蔓遠·요령자만원
긴 구름과 서로 만나 의지하네
會見倚雲長·회견의운장
여름날 그늘을 짙게 드리우더니
夏日成陰重·하일성음중
가을바람에 떨어지는 열매 향기롭네
秋風落子香·추풍락자향
다른 해엔 응당 더욱 좋아지리라고
他年應更好·타년응경호
전에 떠났던 유랑(劉郞)이 다시 찾아 달래는구려
前度說劉郞·전도세유랑
<『국간집』(菊磵集) 중권>
조선 명종 때 청백리에 뽑히고 호조판서를 지낸 윤현(尹鉉·1514∼1578)의 한시 「다래나무 덩굴을 옮겨 심고」[移種獼猴桃蔓]다. 제목의 미후도(獼猴桃)는 다래의 중국 이름이다. 다래는 감, 포도와 같은 장과(漿果)로 분류 되는데 씨를 감싸고 있는 과육에 수분이 많다. 익은 다래의 맛이 좋아서 '원숭이 복숭아'로 통용된 것일까?
조선시대에는 다래에다 꿀을 넣고 조린 미후정과(獼猴正果)를 만들어 먹었다. 『조선왕조실록』 선조 26년(1593) 8월 13일에 '제독은 미후정과 한 접시만을 마셨다'는 기록이 있다. 이는 임진왜란 당시 조선을 지원하러 왔던 명나라 이여송 장군의 귀국 길 동태를 선조께 보고한 내용이다.
개다래 열매 꽃 잎
◆다래나무 사촌들
우리 강산에 터를 잡은 다래나무의 사촌은 그리 흔하지 않지만 개다래와 쥐다래가 있다. 초여름 개화기에 둘 다 하얀 물감을 묻힌 것 같은 잎들이 군데군데 섞여 있어 녹음이 울창한 숲에서도 존재를 알린다. 개다래의 흰 반점은 여름 내내 그대로 있지만 쥐다래의 흰색 잎은 불그스름하게 변한다. 개다래는 개화를 알리는 방법으로 잎의 일부 색깔을 파란색 대신 하얗게 만들어 나비나 벌 등 매개 곤충의 눈에 확 띄도록 한다. 열매를 맺고 자손을 퍼뜨려야하는 그들만의 전략이다.
사람이 먹지 못하는 식물의 이름에 '개'자가 들어가는 경우가 있다. 개머루나 경상도의 '개가죽'이 그렇고 개다래도 마찬가지다. 열매는 익어도 톡 쏘는 맛 때문에 동물은 입에 댈 엄두를 못 낸다. 그러나 벌레들은 개다래를 좋아한다. 다래에는 잘 없는 충영(蟲癭)이라고 부르는 벌레 혹이 많다. 알에서 깨어난 벌레가 머물며 열매를 파먹으면 다래는 화학적 변화를 일으키고 모양이 울퉁불퉁한 기형이 된다. 한방에서는 이를 목천료자(木天蓼子)라는 약재로 쓴다.
양다래 꽃과 열매
◆키위의 원조는 중국 다래
외국에서 들어온 다래의 사촌뻘로는 키위가 있다. 다래과 집안의 후손답게 덩굴성 낙엽과수로 원산지는 중국 양쯔강 연안이지만 서양 과일로 오해하는 사람이 많다. 까닭이 뭘까?
19세기 양쯔강 유역에 살던 서양인의 눈에 띈 덩굴나무 '차이니스 구스메리'(Chinese gooseberry)가 키위의 원조다. 열매의 톡 쏘는 맛이 너무 자극적이라 먹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 후 20세기 초 귀국하는 서양인들의 이삿짐에 실려 뉴질랜드에 조경수나 관상수로 전해졌고, 그 곳의 원예가들이 과일나무로 육종했다.
자잘한 씨앗을 씹는 재미와 시고 단 맛의 묘한 조화로 관심을 끌자 뉴질랜드는 세계시장 진출을 목표로 나무를 대량 재배하고 이름도 '키위플루트'(kiwi fruit)로 바꿔 상품화 했다. 갈색 털로 덮여 있는 열매가 뉴질랜드의 '키위' 새와 닮아서 작명에 착안했다. 중국 다래의 개량종이 아닌 뉴질랜드 키위라는 이름으로 우리나라에 소개됐기 때문에 원산지를 서양으로 착각하는 게 어쩌면 당연하지 않았을까.
키위를 한때 '참다래'라고 부른 적이 있다. 토종다래는 '참이 아닌 가짜' 다래라는 오해의 소지가 다분하다는 여론이 비등하자 양다래라고 바꿨다. 키위는 수확한 뒤 일정 기간 익혀서 먹는 후숙(後熟) 과일이다. 신맛을 좋아하면 약간 과일이 단단할 때, 달콤한 맛을 즐기려면 복숭아처럼 말랑말랑할 때 먹으면 제 맛을 느낀다.
◆다래정 이야기
18세기 조선의 지식인 이덕무가 쓴 「앙엽기2」(盎葉記二)에 다래를 한자의 음을 빌려 쓴 '炟艾'(다래)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미후도(獼猴桃)는 일명 연도(輭桃)이고 속명은 다래[達愛]이다. 『여지승람』(輿地勝覽)에, "고려 신종 초년에 최충헌(崔忠獻)이 내시 민식(閔湜) 등을 축출하자고 주청할 때, 세속에서 왕이 다래정[炟艾井]-상고하건대, 다래[炟艾]는 곧 다래[達愛]와 동음(同音)이다-의 물을 마시면 내시들이 용사(用事)한다 하여 다래정을 허물어 버렸다" 하였고, 속어로 등리(籐梨)를 다래[炟艾]라 하는데 등리 두 글자는 아주 새롭다. <『청장관전서』 제55권>
고려시대 무인정권의 한 축인 최충헌은 이의민(李義旼)을 몰아내고 권력을 찬탈한 뒤 자신의 시대를 새롭게 확립하려 했다. 왕궁의 내시(內侍) 70여 명을 내쫓을 빌미를 찾던 중에 왕이 마시던 우물 '다래정'(炟艾井)에서 꼬투리를 잡았다. "왕이 이 우물물을 마시면 환관(宦官)이 권세를 부리게 되리라"는 시중의 떠도는 말을 대의명분으로 다래정을 폐쇄하고 광명사(廣明寺) 우물의 물을 마시게 했다.
꼭두각시에 불과한 왕이 마실 물조차 마음대로 선택하지 못하던 시대의 이야기다. 역사서 『동사강목』이나 『고려사절요』에도 같은 일화가 나온다. 우물 이름을 다래나무와 연관 지으면서 그 이유는 기록에 없다. 다만 쿠데타 세력이 국정을 농단한 흑역사로 남아 있다.
전 언론인 chunghaman@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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