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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11월 22일자 동아일보에 ‘보기에도 끔찍한 당야(當夜; 그날 밤)의 청중’이라는 제목의 사진이 실려 있다. 종로 중앙 기독교청년회관 1층과 2층을 입추(立錐)의 여지 없이 가득 채운 관중의 광경이 담긴 사진이다. 동아일보가 주최한 ‘제2회 전조선 현상 학생 웅변대회’ 첫날의 분위기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 뜨거운 현장 속으로 들어가 보자.
“음침하던 10월 장마도 활짝 개어 버려 말짱한 겨울밤 하늘엔 수정 같은 별들이 버적거리는 그제 20일 밤! 서울에서 바다이야기5만 도 큰 거리 종로 한복판 중앙 기독교 청년회관 안에서는 장안의 많은 사람이 모두 모여 뒤끓는듯한 잡답(雜沓)한 가운데서, 현하(懸河) 같은 웅변이 유수(流水)같이 흐르는 대 웅변대회가 열려 이에 상화(相和)하는 청중의 우레같은 박수는 그칠 줄을 몰라 종로 일대를 들었다 놓는 듯한 굉장한 광경이 이루었었다. 이것이 동아일보사 주최 제2회 전조선 현상 학생 웅 릴짱 변대회 첫날의 장관이다. 서울 안에서는 크다고 하는 강당이지마는 지난번의 경험이 있었으므로 해일(海溢) 같이 밀려드는 그 많은 청중을 어찌 다 수용할까 하는 염려가 미리부터 없지 않았지마는, 그밖에 달리 구할 수도 없는 우리의 형편이라 어쩔 수 없이 그리로 장소를 정하였었더니 과연 이는 예기(豫期)한 것보다도 큰 혼잡을 이루어 다투다가도 할 수 없이 돌아가 릴게임뜻 는 여러 관중에 대한 동아일보사의 죄송과 미안이 시간이 갈수록 더 하였을 뿐이었다. 정각은 7시라 하였었으나 정각 1시간 전 6시에 벌써 회관 강당은 물론 오락장, 도서실, 층층대, 정문 밖, 큰길 전찻길까지 들어 갔다. 밀려 나오는 사람, 그래도 들어가나 보자고 틈을 뚫은 사람이 천장(千丈) 심해(深海)에 소용돌이 치듯이 핑핑 돌고 있는 것은 그 어느 때 야마토연타 를 지난 후에는 처음 보는 종로 거리의 큰 위관(偉觀; 장엄한 광경)이었으며 필경은 쇄도한 군중으로 2층 문이 부서지며 집물(什物)이 깨어지는 험상한 상태에까지 이르렀었다. 이와 같이 더욱 문 옆에는 스무 겹 서른 겹으로 사람의 성(城)을 쌓고 섰으므로 연사들과 주최자 측 심판들까지 용이하게 들어 갈 수가 없어서 한참 동안 고생을 하다가 겨우 지붕을 넘어 사이다릴게임 쓰지 않는 뒷문으로 겨우 들어가게 된 관계로 정각보다 3분 동안이나 늦어서야 겨우 개회를 선언하게 되었는데, 다행히 들어온 청중들은 7시도 늦다는 듯이 박수로 개회를 재촉하던 터라, 사회자 최원순(崔元淳)씨가 등단하자 열광한 청중은 미친 듯이 박수로써 환영하였다. (하략) ”
8명 연사들은 대회에서 과연 무슨 열변을 토했을까. 각 연사의 연제(演題)와 학교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함흥 영생학교 김완준(金完俊)의 ‘우리는 신조선을 건설하자’ △전주 신흥학교 김규동(金奎東)의 ‘개척의 준비’ △경성 보성고보 박낙균(朴樂均)의 ‘싸움’, △개성 송도고보 이석환(李錫煥)의 ‘현하(現下) 조선의 활로’ △경성 배재고보 김계호(金啓鎬)의 ‘조선의 현상과 우리의 사명’ △평양 숭인학교 장인택(張仁澤)의 ‘현대의 조선 학생’ △선천 신성학교 김양선(金良善)의 ‘청년아, 깨어 노력하라’ △협성학교 김계담(金桂談)의 ‘조선의 중학생은 분발하자’ 등이다.
그런가 하면 임장(臨場; 현장에 나옴)한 순사에 의해 웅변이 중지된 연사가 또한 8명이 있었다. 그들은 또한 누구이며 그 연제는 무엇이었을까? △평양 숭실중학 명신홍(明信弘)의 ‘동경하는 신생활’ △대구 계성학교 권태희(權泰羲)의 ‘우리 현상과 장래’ △중앙 기독청년회학관 서삼차(徐三次)의 ‘조선인의 현하(現下) 생활’ △평양 광성고보 김은철(金殷哲)의 ‘조선 중학생의 하소연’ △전북 고창고보 서형남(徐亨南)의 ‘우리의 짐’ △홍원 육영학교 박재호(朴在鎬)의 ‘용사(勇士)되자’ △경성 중앙고보 김항섭(金恒燮)의 ‘순서를 찾자’ △공주 영명학교 이태용(李兌鎔)의 ‘우리의 생활 상태를 보고’ 등이다.
이러한 웅변대회의 평가, 즉 심사위원은 누가 어떻게 하였을까? 신문에는 심판에 대한 이야기가 짤막하게 실린다. “현상 웅변대회이므로 작년 대회와 같이 웅변대회 끝에 연사에 대한 비평을 하여 등급을 정한 후 본사에서 소정한 상품을 증여할 터인데, 심판원으로는 작년대로 언론에 권위를 가지고 있는 최린(崔麟)씨와 김창제(金昶濟)씨 두 분에게 맡기기로 하였다.”
1925년 11월 24일자 동아일보는 웅변 대회 현장을 해학적 필치로 기록하고 있다. 기사에 따르면 대회장 주변은 이른 새벽부터 관중들로 들끓었다. 오전 6시 10분쯤 이미 입장권은 모두 팔린 뒤였지만, 표를 사지 못한 수백 명이 문 앞에서 물밀 듯 몰려들어 큰 소란이 벌어졌다. 군중이 서로 밀치다 보니 ‘넓적다리에서는 비파 소리가 날 지경’이었다고 신문은 전한다.
현장을 취재한 동아일보 기자는 문 앞에서 신분을 밝히며 한참 동안 ‘애걸복걸’한 끝에 간신히 입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회관 안으로 들어선 순간, 기다림의 고생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대회장은 관중들로 가득 차 있었다. 윗층에서는 ‘우지직’ 하는 소리가 들려 관객들이 순간 겁을 먹기도 했지만, 육중한 회장(會場)이 설마 무너지기야 하겠느냐며 누구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
입장하지 못한 일부 관객들은 유리창에 매달려 안을 들여다보았지만, 자세가 불안한 탓에 박수 한 번 제대로 치지 못해 안쓰러운 모습이었다고 한다. 대회장 내부의 분위기는 활기찼다. 어떤 이는 “아멘!”을 외치며 엉뚱한 응원을 보내기도 했다. 사진을 찍을 때 마그네슘이 ‘펑’ 하고 터지자 흥에 겨워 “얼시고!”를 외친 이도 있었다. 웅변회인지 음악회인지 헷갈려 “앵콜!”을 외치며 한 번 더 하라고 고집을 부린 관객도 있었다.
당시의 웅변대회는 단순한 행사가 아니라, 대표적 대중 오락이자 정치·사회적 관심이 응집되는 자리였다. 1925년 동아일보의 기사는 혼란스럽지만 뜨거웠던 그 시절의 현장을 생생한 유머와 함께 되살리면서 조선 청년들이 가졌던 시대정신도 전해준다. 기자 admin@gamemong.info
1925년 11월 22일자 동아일보에 ‘보기에도 끔찍한 당야(當夜; 그날 밤)의 청중’이라는 제목의 사진이 실려 있다. 종로 중앙 기독교청년회관 1층과 2층을 입추(立錐)의 여지 없이 가득 채운 관중의 광경이 담긴 사진이다. 동아일보가 주최한 ‘제2회 전조선 현상 학생 웅변대회’ 첫날의 분위기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 뜨거운 현장 속으로 들어가 보자.
“음침하던 10월 장마도 활짝 개어 버려 말짱한 겨울밤 하늘엔 수정 같은 별들이 버적거리는 그제 20일 밤! 서울에서 바다이야기5만 도 큰 거리 종로 한복판 중앙 기독교 청년회관 안에서는 장안의 많은 사람이 모두 모여 뒤끓는듯한 잡답(雜沓)한 가운데서, 현하(懸河) 같은 웅변이 유수(流水)같이 흐르는 대 웅변대회가 열려 이에 상화(相和)하는 청중의 우레같은 박수는 그칠 줄을 몰라 종로 일대를 들었다 놓는 듯한 굉장한 광경이 이루었었다. 이것이 동아일보사 주최 제2회 전조선 현상 학생 웅 릴짱 변대회 첫날의 장관이다. 서울 안에서는 크다고 하는 강당이지마는 지난번의 경험이 있었으므로 해일(海溢) 같이 밀려드는 그 많은 청중을 어찌 다 수용할까 하는 염려가 미리부터 없지 않았지마는, 그밖에 달리 구할 수도 없는 우리의 형편이라 어쩔 수 없이 그리로 장소를 정하였었더니 과연 이는 예기(豫期)한 것보다도 큰 혼잡을 이루어 다투다가도 할 수 없이 돌아가 릴게임뜻 는 여러 관중에 대한 동아일보사의 죄송과 미안이 시간이 갈수록 더 하였을 뿐이었다. 정각은 7시라 하였었으나 정각 1시간 전 6시에 벌써 회관 강당은 물론 오락장, 도서실, 층층대, 정문 밖, 큰길 전찻길까지 들어 갔다. 밀려 나오는 사람, 그래도 들어가나 보자고 틈을 뚫은 사람이 천장(千丈) 심해(深海)에 소용돌이 치듯이 핑핑 돌고 있는 것은 그 어느 때 야마토연타 를 지난 후에는 처음 보는 종로 거리의 큰 위관(偉觀; 장엄한 광경)이었으며 필경은 쇄도한 군중으로 2층 문이 부서지며 집물(什物)이 깨어지는 험상한 상태에까지 이르렀었다. 이와 같이 더욱 문 옆에는 스무 겹 서른 겹으로 사람의 성(城)을 쌓고 섰으므로 연사들과 주최자 측 심판들까지 용이하게 들어 갈 수가 없어서 한참 동안 고생을 하다가 겨우 지붕을 넘어 사이다릴게임 쓰지 않는 뒷문으로 겨우 들어가게 된 관계로 정각보다 3분 동안이나 늦어서야 겨우 개회를 선언하게 되었는데, 다행히 들어온 청중들은 7시도 늦다는 듯이 박수로 개회를 재촉하던 터라, 사회자 최원순(崔元淳)씨가 등단하자 열광한 청중은 미친 듯이 박수로써 환영하였다. (하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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